2024.08.28 │ 예산담당관 예산운영팀 / 권미경 / 02-2282-8632
한국사회에 하나의 ‘헛된 믿음’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그것은 지방교육재정이 남아돈다는 것이다. 이 믿음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어느새 실체화되어, 끊임없이 ‘교육재정을 줄이고 이를 더 필요한 용도로 돌려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3~4년 전만 해도 이 믿음은 그래도 실체성이 있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 등으로 인하여 세수가 급증했고, 이로 인해 내국세에 연동된 지방교육재정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여 전부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세수가 급감한데다 정부가 긴축재정을 펴면서, 내국세에 기반한 지방교육재정은 갑작스럽게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작년 후반, 올해(2024년) 예산을 편성할 때 예산부서가 모든 부서에 전년 대비 30% 삭감하여 예산을 편성하도록 요청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내년도(2025년) 예산을 편성하면서는 금년 대비 50% 삭감한 예산을 짜도록 요청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실제와는 상관없는 허상에 기대어 지방교육재정 현실을 예단하지 말고, 진지하게 상황을 점검하고 지방교육재정의 대안적 해결책을 논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자.
최근 기획재정부 보도자료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국세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0조원(△5.6%)이 줄어든 가운데, 하반기에도 상당한 규모의 세수 결손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이에 따라 초‧중등교육의 주된 재원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부금)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지방교육재정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방교육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부금은 내국세의 일정 비율(20.79%)을 정률 교부받고 있는데, 최근 몇 년을 제외하고는 실제 유‧초‧중고 교육을 위해 필요한 금액보다 적게 교부되어 서울시교육청은 빚(지방채)을 내어 부족분을 충당해왔다.
그러다가 최근 3~4년간 세수 확대로 인해 교부금이 증가하자 남는 재원을 기존 지방채 상환 및 향후 세수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서울시교육청은 약 6천6백억원(′23년 기준)의 재정안정화기금을 적립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일부 언론과 재정당국에서는 ‘교육청 예산이 남아돌아 곳간에 돈을 쌓아두고 있다’며 교부금을 줄이고 남는 재원을 다른 곳에 사용하자는 식의 악의적 여론전을 펼친 바 있다.
하지만 교부금은 2022년을 정점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22년 7조 5,896억원이었던 교부금은 ′24년 5조9,141억원으로 고점 대비 22%나 감소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의 예산도 지속적으로 감액하여 편성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본예산은 ′23년 12조 8,915억원, ′24년 11조 1,605억원이였고, ′25년은 10조 6,935억원(추계)으로 편성할 예정이다.
또한 재정 여건 악화로 ′25년 예산안의 경우 ′24년도 본예산 대비 시설사업비는 50% 감액, 교육사업비는 필수경비를 제외한 운영비성 경비 50% 감액, 학교운영비는 동결할 예정으로서 말 그대로 ‘마른 행주를 짜내듯’ 긴축 재정을 편성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교육청의 세출 구조는 고정경비의 비중이 전체의 70%를 상회한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24년 본예산 11조 1,605억원 중 인건비 7조 956억원(63.6%), 학교운영비 9,970억원(8.9%)으로서 전체 예산 중 고정경비 비중이 72.5%에 이르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지방교육재정이 갑자기 줄어든다면 경직성경비 비중이 높은 교육청의 재정구조의 특징상 대규모로 세출 구조조정을 하기는 불가능하므로, 세출 구조조정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족분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재정안정화기금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재와 같은 세수 부족 사태가 지속된다면, ‘교육청 예산 여유’,‘교육청 방만 운영’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어렵사리 마련해놓았던 재정안정화기금은 몇 년 지나지 않아 전부 소진되어 버릴 점이라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4년도에 재정규모 축소로 안정화기금 적립액의 50%인 3천 3백억원을 사용하였고, ′25년에도 50%인 1천 7백억원을 사용하게 되면 기금적립금 마저도 곧 소진될 것이다. 그러므로 유‧초‧중등교육의 정상적 운영을 위하여 머지 않아 예전과 같은 지방채 발행 사태가 반복될 우려가 크다.
이에 더하여 시·도는 ‘교육재정합리화 방안’이란 이름 아래, 교부금과 더불어 지방교육재정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시도 법정전출금’제도를 개편하여 전출액을 줄이는 것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듯 지방교육재정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임에도, 미래세대를 위한 새로운 교육재정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금 국책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디지털 교과서 보급 등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을 비롯하여, ′24년 2학기부터 전면화되는 초등 늘봄학교 사업, 그리고 유보통합 추진 등 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부모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교육재정의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저출생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국가의 존립마저 위협하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고 출산율을 늘리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세우고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적게 태어나서 더욱 소중한 미래세대를 정성을 다해 훌륭하게 키우는 것도 국가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안정적인 지방교육재정을 확보하는 것은 저출생 시대에 적게 태어난 어린 세대를 한사람 한사람 훌륭한 인재로 길러내어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행복한 삶을 뒷받침하고, 국가적으로는 공동체의 밝은 앞날을 개척하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른 시일 안에 세수 감소로 인한 지방교육재정 위기 사태를 해결할 대책을 전국민 앞에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2024. 8. 28.
서울특별시교육감 조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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