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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인사이트

저마다의 속도로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교실

느린 학습자의 속도를 포용하는 교육

글. 김동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육상담전공 교수, 서울대 특수교육연구소 소장 / 정리. 편집실
청소년 연구소 10월

학교에서는 같은 교육과정에 따라 평균적인 속도로 같은 내용을 배우지만, 모든 학생이 그 속도에 맞춰 배우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교육현장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느린 학습자에게는 더욱 세심한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다. 학생마다 다른 배움의 속도를 인정하고 자신만의 속도를 이해하는 것, 느린 학습자를 위한 교육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평균이 아닌 ‘자신만의 속도’를 바라보다

‘느린 학습자(Slow Learner)’는 교육현장에서 또래보다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폭넓게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지적 기능과 적응행동 수준이 평균 범위보다 낮지만, 지적장애의 기준에는 해당하지 않는 경우를 ‘경계선 지적 기능성(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BIF)’이라고 하는데, 지능지수 71~84 사이로 평균보다 살짝 낮아 지적장애에 해당하지 않지만 사회 적응이 어려워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다. 이들은 기존 교육지원 체계에서 어려움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해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느린 학습자라 하더라도 어려움을 겪는 지점은 서로 다르다. 어떤 학생은 선생님의 설명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떤 학생은 수업 시간에는 이해한 것처럼 보여도 다음 날이면 배운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읽고 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여도 문제의 핵심을 찾거나 원인과 결과를 추론하는 일이 어려울 수 있고, 또래와 관계를 맺는 일이 더 어려운 학생도 있다. 따라서 느린 학습자의 어려움을 성적표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학습 과정에서는 정보를 지각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기억하고 처리하고 추론하는 여러 인지 과정이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교육에서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들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로 다른 학생에게 서로 다른 배움의 경로가 필요하다는 사실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학습을 넘어 일상에서 경험하는 어려움

학습의 이면에는 정보를 지각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잠시 기억하고, 처리하고, 추론하는 여러 인지 과정이 동시에 작동한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교과서 32쪽을 펴고, 문제를 읽은 다음 중요한 말에 밑줄을 긋고 답을 써보세요”라고 한다고 해보자.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평범한 지시지만 작업 기억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에게는 문제를 풀기도 전에 두 번째나 세 번째 지시가 머릿속에서 사라질 수 있다. 처리 속도가 느린 아이는 문제의 답을 적는 동안 친구들이 이미 다음 활동으로 넘어갈 수 있다. 추론이 어려운 학생은 배운 공식이나 방법을 기억하고 있어도 문제가 조금만 달라지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헤매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어려움은 학습 밖으로 확장된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험이 누적되면 자신감이 낮아지고 ‘나는 해도 안 된다’라는 학습 무기력이 생긴다. 또한 친구의 가벼운 농담이나 숨은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대화의 흐름을 놓쳐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따라서 느린 학습자를 이해하려면 인지, 학습, 사회적 정서, 적응행동을 서로 떨어진 영역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보이는 ‘멍하니 있음’, ‘느림’, ‘포기함’이라는 행동 뒤에는 서로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보다 그 행동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교육적 지원의 출발점이다.

경계선 지능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신체 · 대근육, 소근육 발달 지연 인지·학습 · 국어/언어에서의 어려움
· 일반화의 어려움
인지·학습 · 국어/언어, 수학 연산/문장제에서의 어려움
· 집중력 부족
· 낮은 기억력
· 학습된 무기력
정서·행동 · 상황인지능력 부족
· 정서적 불안정
정서·행동 · 감정 조절 어려움
· 상황인지능력 부족
· 사춘기 및 자기 이해의 어려움으로 인한 고민
사회성 · 또래 관계 맺기의 어려움
사회성 · 또래 관계 맺기의 어려움
· 사회성 기술 부족
학교적응 · 학교 부적응
학교적응 · 담임교사 역할의 중요성 전환
(진로·자립)
· 졸업 이후 갈 곳이 없음
· 복지 사각지대로 지원받기 어려움
자료: 황지은 「부모 인식에 따른 경계선 지능 청소년의 사회·정서적 특성 탐색」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석사학위논문, 2022

느린 학습자를 위한 증거 기반 지원 교육 제공

그렇다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단순히 설명을 더 많이 반복하거나 학습량을 줄여 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어려움이 발생하는 지점에 맞추어 학습 환경과 교수 방법을 조정하는 것이다. 먼저 한 번에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을 줄인다. 과제를 작은 단계로 나누고 한 단계가 끝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한다. 그림이나 핵심어와 함께 제시하면 기억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반복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듣고-보고-직접 해 보고-자신의 말로 설명해 보는’ 것이 더 의미 있다. 도움을 주는 방식도 중요하다. 처음에는 예시를 보여 주고, 함께 해 보고, 필요한 단서를 제공하되 익숙해질수록 도움을 조금씩 줄여야 한다. 학생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늘려 가는 것이다. 사회정서와 적응행동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 대화에 참여하는 방법,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 갈등 상황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느린 학습자에게는 연습할 기회가 필요하다.
가정에서는 해야 할 일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 주는 것이 도움 된다. ‘세수하기-옷 입기-아침 먹기-가방 확인하기’처럼 순서를 보여 주고, 처음에는 부모가 함께 확인하다가 점차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한다. 숙제나 시험공부 역시 한꺼번에 계획하기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나누고 하나씩 완료하는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한 학생이 평균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다는 이유로 다음 배움으로 향하는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 모두에게 하나의 길을 걷게 하는 대신, 같은 배움에 도달할 수 있는 서로 다른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느린 학습자의 ‘자신만의 속도’를 이해하는 것은 그 길을 여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