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재발견

붉은 벽돌집에 깃든
한국 사랑과 독립운동

딜쿠샤

글. 강진우 / 사진. 김성재

딜쿠샤 이미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제의 폭거에 온몸으로 맞선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고단했다. 하지만 그 여정이 외롭기만 했던 건 아니다. 대한 독립을 위해 다방면으로 헌신한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딜쿠샤’의 주인이었던 앨버트 W. 테일러도 그중 한 명이었다.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반도의 근대사를 함께한 그의 일생을 살펴보기 위해 딜쿠샤를 찾았다.

1926년 화재가 발생하기 이전의 딜쿠샤 1926년 화재가 발생하기 이전의 딜쿠샤

딜쿠샤는 대한 독립을 위해
다방면으로 헌신한
앨버트 W. 테일러 부부가
1924년 지은 서양식 주택이다.

100년 고택에 숨은 건축적 가치

독립문과 광화문 사이를 잇는 사직로를 걷다 보면 인왕산 쪽 주택가 골목 사이로 이색적 건축미를 뽐내는 붉은 벽돌집이 눈에 들어온다. 앨버트 W. 테일러(이하 앨버트) 부부가 1924년에 지은 서양식 주택 ‘딜쿠샤(Dilkusha)’다. 딜쿠샤는 ‘기쁜 마음’이라는 뜻의 페르시아어로, 가족의 일상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이름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딜쿠샤는 1920년대 서양식 주택의 전형적인 공간 구조를 갖추고 있다. 중앙에는 대형 거실과 베란다가, 양옆에는 침실·부엌·식당·서재 등이 들어서 있는 구조다. 흥미로운 점은 2018년 복원 공사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10여 가구가 살고 있었음에도 붉은 벽돌로 쌓은 벽체가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다.
튼튼함의 비결은 ‘공동벽돌 쌓기’라는 공법이다. 벽체를 세울 때 안쪽 벽과 바깥쪽 벽 사이에 공간을 만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벽 사이 공간을 가로지르는 벽돌을 양쪽 벽에 맞물리도록 쌓는 방식이다.

앨버트 부부 사진

이렇게 하면 벽체의 안정성이 강화되고, 벽 사이 공간 덕분에 단열·보온·방습·방음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공동벽돌 쌓기는 두 겹으로 벽체를 쌓는 게 일반적인데, 딜쿠샤는 세 겹으로 더욱 두껍게 벽체를 쌓았다. 우리나라의 뚜렷한 사계절을 쾌적하게 나기 위한 지혜이자, 딜쿠샤의 벽체가 한 세기 풍파를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준 설계다. 이 같은 공법은 한국의 근대건축물 중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벽돌 쌓기 방식이기에 그 자체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딜쿠샤의 철자와 건축 연도인 ‘1923’ 등이 새겨져 있는 정초석도 외관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앨버트 가족이 살았던 당시를 재현한 1층 거실 앨버트 가족이 살았던 당시를 재현한 1층 거실

앨버트가 발견한 독립선언서와 장모에게 쓴 편지 앨버트가 발견한 독립선언서와 장모에게 쓴 편지

‘제2의 조국’에서의 삶, 그리고 강제 추방

고택 특유의 고즈넉함이 잘 살아 있는 외부를 감상한 뒤 현관문을 여니 앨버트 가족이 살았던 당시를 재현한 1층 거실이 관람객을 반긴다. 앨버트는 이곳에서 살며 딜쿠샤 내·외부 곳곳을 비교적 자세히 사진으로 남겼는데, 덕분에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되살릴 수 있었다. 100년 전의 모습을 현재로 불러오기 위해 사진을 세밀하게 분석한 뒤 실제로 그 무렵 사용되던 골동품을 구매하는 등 고증을 위해 치밀하게 노력한 관계자들의 노고가 곳곳에 녹아 있음을 알고 나니 이 풍경이 자못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1층 동쪽 방에는 미국인 사업가 앨버트와 그의 배우자인 영국인 배우 메리 L. 테일러(이하 메리)의 결혼 이야기와 이들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머물렀던 한옥인 ‘작은 회색집(The Little Gray House)’에 대한 정보가 보기 좋게 정리돼 있다. 이후 이곳 땅을 산 뒤 딜쿠샤를 짓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당시 토지대장 등의 문서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거실 반대편의 서쪽 공간은 앨버트 가족이 어떻게 한국에서 살게 됐으며, 실제로 한반도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앨버트의 아버지인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는 미국인으로서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광산 기술자 중 한 명이다. 앨버트와 그의 동생 윌리엄은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이듬해인 1897년 조선 땅을 밟았으며, 이후 금광 경영과 골동품점 및 상회 운영 등을 통해 탄탄한 생활 기반을 마련했다. 아내인 메리 또한 한반도의 생활상과 풍속을 글·그림·사진으로 남기는 등 한국에서의 삶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런 과정에서 앨버트 가족은 자연스럽게 한국을 모국 이상으로 사랑하게 됐다. 이 공간에 전시돼 있는 각종 사료가 이들의 애정 어린 마음을 방증한다.
한편 바로 옆방에는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후 강제 추방, 앨버트의 사망과 유해 수습에 이르기까지의 절절한 사연이 전시물과 함께 소개돼 있다. 이 방을 관람하고 나니 머릿속에 물음표가 저절로 떠오른다. 왜 이들은 제2의 조국과 같던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복원된 딜쿠샤 내부 응접실 전경 복원된 딜쿠샤 내부 응접실 전경

앨버트의 사연이 전시된 방 앨버트의 사연이 전시된 방

앨버트의 삶을 보여주는 각종 사료 앨버트의 삶을 보여주는 각종 사료

한국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다

궁금증은 2층 서쪽 공간에서 풀린다. 한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발돋움한 앨버트는 한반도의 주요 소식을 세계에 상세하게 전할 수 있는 적임자였고, AP통신은 1919년 1월 21일 승하한 고종황제의 국장을 취재해달라고 요청했다. 전국의 수많은 인파가 인산일(발인)인 3월 3일에 맞춰 경성으로 모여들었는데, 독립운동가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3·1 만세운동을 거행했다.
이런 와중에 앨버트는 하루 전인 2월 28일 3·1 만세운동이 일어날 거라는 걸 우연히 알았다. 그날 아들 브루스 T. 테일러(이하 브루스)가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났는데, 이 병원의 제약 주임이자 3·1 만세운동 민족 대표 중 한 사람이었던 이갑성 선생은 학생들과 힘을 합쳐 수만 부의 3·1 독립선언서를 등사했고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병원 구석구석에 등사본을 숨겼다. 그중 한 뭉치가 메리의 침대 속에 있었고, 한국어에 능통했던 앨버트는 이 종이가 3·1 독립선언서라는 걸 알아챈 뒤 즉시 기사를 작성했다. 그와 동시에 동생 윌리엄에게 독립선언서와 기사를 전달하며 일제 몰래 미국에 타전하도록 했다. 덕분에 독립선언서 내용을 다룬 기사가 3월 13일 자 <뉴욕타임스>에 실렸고, 한국인들이 독립을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전해졌다. 이후에도 앨버트는 고종황제 국장,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면밀히 취재해 일제의 만행과 한민족의 고통을 널리 알리는 등 ‘외국인 독립운동가’로 불리기에 부족함 없는 활동을 펼쳤다.
이 같은 이력이 있는 데다가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치르게 됐으니, 일제로서는 앨버트 가족을 강제 추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도착했지만, 앨버트 가족의 마음은 변함없이 한국에 머물러 있었다. 일제가 패망한 후 앨버트는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애썼으나, 끝내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1948년 6월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앨버트의 한국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아내 메리는 3개월 뒤 한국에 입국해 남편의 유해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치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2층 서쪽 공간을 나서며 저도 모르게 마음이 먹먹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층 동쪽 공간에는 6월 28일까지 열리는 기획 전시 <독립, 일상에서 지킨 염원>이 한창이다. 앨버트와 그의 사업 파트너인 김 주사(김상언)의 깊은 인연을 집중 조명하는 이 전시에서는 앨버트가 독립운동가적 면모를 발휘하는 데 있어 김주사가 상당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공간을 관람하고 나면,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2층 베란다 창문으로 향한다. ‘딜쿠샤에서 내려다본 서울’이라는 제목과 당시 서울의 전경이 안내판에 담겨 있다. 당시에는 사방이 훤했을 창밖 풍경은 100년이 넘은 지금 아파트와 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선 첨단 도시의 풍경으로 바뀌어 있다. 앨버트 부부가 오늘날의 상전벽해를 목격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아마 동그래진 눈으로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1919년 제암리 학살 사건을 보도한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 1919년 제암리 학살 사건을 보도한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

딜쿠샤 사진앨범 딜쿠샤 사진앨범

딜쿠샤(Dilkusha)

장소아이콘 장소: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2길 17 시간 아이콘 관람 시간: 화~일요일 9:00~18:00(17:30까지 입장 가능) /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관람료 아이콘 관람료: 무료 문의 아이콘 문의: 070-4126-8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