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식물을 살피고 어루만지는 일
서울식물원의 대표 공간인 온실에 들어서면 공기부터 달라진다. 습기가 가득한 열대관에서는 바나나 나무와 커피 나무, 파파야, 망고 나무 등이 자라고, 지중해관에서는 올리브와 허브 그리고 선인장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든다. 가운데가 볼록하게 솟은 일반적인 온실(돔형 구조)과 달리 오목한 접시 모양의 서울식물원 온실은
열대·지중해 기후의 12개 도시 식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3,000여 종의 식물을 만날 수 있다.
이 거대한 온실 뒤에는 식물을 돌보는 사람들의 세심한 관리가 배어 있다. 식물연구사와 식물 유지관리 담당자들은 매일 식물 상태를 확인하며 병해충 여부를 살피고, 식물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한다. 특히 온실은 일반 농약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천적과 페로몬 트랩*을 활용한 친환경
방식으로 관리한다.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일반 난방기 대신 온수 파이프와 분무 시설을 활용해 열대식물이 안정적으로 생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온실 밖 주제 정원 역시 수많은 사람의 관리로 유지된다. ‘오늘의 정원’, ‘바람의 정원’, ‘숲 정원’ 등 여덟 가지 테마로 구성된 주제 정원은 완연한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봄에는 철쭉과 이팝나무의 꽃이 피고 여름에는 연꽃과 수국이 정원을 채운다. 정원 관리사들은 매일 정원을 돌며 가지가 부러진
식물은 없는지, 벌레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등을 확인하고 폭염과 한파 같은 날씨 변화에도 대응한다. 어떤 식물을 어디에 심고, 계절별 분위기를 어떻게 연출할지 자문위원의 의견에 따라 정원 조성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서울식물원 식물연구사 김민영 주무관은 식물을 관리하는 일에는 꾸준한 관찰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식물을 좋아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목원이나 식물원을 많이 다니면서 식물을 자주 보고 경험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이어 식물연구사나 식물 관리 분야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원예학과, 조경학과, 산림 관련 전공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페로몬 트랩 : 성 유인 물질을 이용한 곤충포획장치. 주로 해충의 예찰에 많이 쓰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식물을 기록하다
화려한 온실과 정원 뒤에는 시민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공간도 있다. 바로 서울식물원 식물연구소다. 이곳에서는 식물을 단순히 전시하는 것을 넘어 식물 자원을 기록하고 보전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진다. 식물연구과의 식물 연구 담당자들은 서울식물원의 목표종과 보호종을 수집하거나 이를 증식하고,
식물 유전자원을 보전하는 일을 맡는다. 또 희귀식물과 자생식물의 종자를 저장하고, 특정 식물이 안정적으로 증식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기후변화로 사라질 수 있는 식물을 보전하고 다시 자연으로 되돌리기 위한 연구도 진행한다.
연구소 안에는 조직 배양실과 무균실, 재배 증식 온실 같은 전문 시설도 마련돼 있다. 연구사들은 이곳에서 식물 조직을 배양하고 생육 데이터를 기록하며, 식물의 특성과 재배 환경을 연구한다. 재배 증식 온실에서는 전시에 필요한 식물을 직접 키우고 관리하기도 한다. 식물자원저장소에서는 멸종
위기·희귀·특산 식물의 종자와 표본을 보관한다. 어떤 식물이 어디에서 자라는지,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지 데이터를 구축하고 기록하는 것도 연구소의 중요한 역할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식물연구소는 미래 세대를 위해 식물을 기록하고 지켜내는 일을 이어가고 있었다.
책을 빌리듯 씨앗을 빌려 기를 수 있는 씨앗도서관
<우리들의 자연, 행성적 공존> 기획전시
여덟 가지 테마로 구성된 주제정원
식물에 대해 배우고,
직접 경험하는 곳으로
서울식물원은 식물을 단순히 관람하는 공간을 넘어 시민들이 자연을 직접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이러한 역할은 전시교육과에서 맡고 있다. 식물과 예술을 연결하는 전시부터 시민 체험 프로그램까지 식물을 보다 쉽고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다.
온실 안에서는 계절마다 특별 전시가 열린다. 식물 사이를 거닐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최성임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들은 인공적인 조형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열대 생태계의 일부처럼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전시 기획 담당자들이 식물과 작품이 조화를 이루도록 공간을 구성하고 방문객 동선까지 함께 고민한
덕분이다. 올해 5월에는 전라남도농업기술원과 협력해 다양한 국산 수국 품종을 소개하는 <낭만수국전>도 진행했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품종의 수국과 대형 포토 존을 조성해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단순히 식물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이 계절과 식물을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교육 프로그램 역시 서울식물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씨앗 도서관과 어린이 정원학교, 시민 대상 식물 해설 프로그램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운영한다. 전시교육과에서는 연령대에 맞는 교육 콘텐츠를 기획하고, 시민들이 식물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서울식물원 홍보 담당 허준 주무관은 “도심에서는 자연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시민들이 식물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서울식물원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식물 전시를 넘어 자연을 경험하게 만드는 일 역시 서울식물원을 움직이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식물을 가꾸는 식물연구사와 정원관리사부터 연구소에서 식물 자원을 기록하고 보전하는 연구사, 시민들이 자연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전시교육과까지. 도심 속 초록은 식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늘도 서울식물원 곳곳에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연을 돌보고
연결하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도심 속 초록은 식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늘도 서울식물원 곳곳에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연을 돌보고
연결하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다양한 국산 수국 품종을 소개한 ‘낭만 수국전’
최성임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