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포유

첨단 기술의 최전선에서
먼저 만난 미래

한국기계연구원 첨단로봇연구센터

글. 박예나 / 사진. 엄태헌 / 기타 출처. 한국기계연구원 첨단로봇연구센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로 세계가 발칵 뒤집힌 것도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이제는 Chat GPT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학교 과제를 논의하는 경지에 이르렀고, 인공지능(AI)이 적용되는 분야도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그중에서도 AI와 로봇이 결합한 ‘휴머노이드’는 현재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기술로, 국내 휴머노이드 개발의 최전선에는 한국기계연구원이 있다. 휴머노이드의 공식 발표를 앞둔 지금, 미래로 성큼 나아간 기술과 그 현장을 만나러 갔다.

산업용 로봇에서 시작된 휴머노이드의 역사

한국기계연구원 건물 입구에서부터 취재진을 맞는 존재가 낯설다. 주저 없이 다가오는 데서부터 일단 흠칫 놀라게 되는데,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범상치 않다. 태극기를 쥔 양팔을 흔들며 움직이는 모바일(mobile: 이동하는) 양팔 로봇이다. 과연 첨단로봇연구센터다운 환영 인사다. “우리 센터의 마스코트입니다”라고 뒤따라온 박동일 센터장이 소개한다. 첨단로봇연구센터에서 하는 일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정부출연연구기관 중에서도 기계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기관으로, 한국기계연구원 안에서도 AI와 로봇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집단이 이곳 ‘첨단로봇연구센터’다. 현재 첨단로봇연구센터에서 집중하고 있는 연구는 ‘휴머노이드’다. 산업용 단일팔 로봇 연구에서 출발해 양팔 로봇, 협동 로봇, 그리고 모빌리티 기술을 적용한 모바일 협동 로봇 연구를 거쳐 이제 그간 해온 연구의 총 집합체인 ‘휴머노이드’로 진화하기 직전이라고 한다.
“제조업이 호황이던 과거에는 산업현장에서 어떻게 로봇을 활용할지에 대해 주로 고민했습니다. 로봇의 활용을 고민할 때 ‘속도와 정밀도’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안전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데요. 그래서 당시만 해도 로봇과 사람은 한 공간에 있을 수 없고, 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면 무조건 작업을 중단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2006년 이후 협동로봇 즉, 사람의 간단한 동작과 지시에 반응하는 로봇의 개념이 생기면서 안전성이 담보되자 그 법이 사라지고, 로봇의 활용 범위가 확장되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로봇 연구가 탄력받았다고 박 센터장은 회고했다. 특히 양팔로봇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단일팔로봇이 주변 환경이 충분히 뒷받침된 상황에서 단순 반복 작업만 수행할 수 있다면, 양팔로봇은 주변 장치를 쓰지 않고도 사람처럼 혼자 작업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그야말로 사람의 양팔 작업을 그대로 모사한 것. 그 과정에서 더욱 정밀한 작업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그리퍼(gripper)와 ‘도구 사용’이 가능한 로봇손도 개발했다.

AI가 앞당긴 휴머노이드의 세계

사실 모바일 로봇은 움직임 때문에 정밀도가 떨어져 현장에 투입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AI가 도입되어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움직이는 로봇의 작업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렸다. 이에 첨단로봇연구센터도 모빌리티 기술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초기에는 움직임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한 바퀴형 로봇을 개발하다가, 기존에 연구해온 협동로봇과 양팔로봇에 모빌리티 기술을 접목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지형의 한계를 극복하면 더 많은 일을 기계가 대신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보행형 로봇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고난도 작업 기술(로봇손, 단일팔로봇, 양팔로봇), 협력지능 기술(협동로봇), 이동 기술 로봇(모빌리티, 레그)까지 개발이 진척되자 다음 연구는 자연스럽게 휴머노이드로 향했다.
“20년 가까이 축적된 연구가 있기에, 그리고 집약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각 기술들을 타사 대비 5~6년가량 앞서 개발해왔기에 가능했죠. 휴머노이드 개발을 시작한 지 1년 남짓이지만 벌써 1차 공개가 가능한 수준이죠.”
로봇 연구에 20여 년을 바친 박동일 센터장의 말이다. 아직 하드웨어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준비된 소프트웨어 기술들은 외산 플랫폼에 적용해보며 기술력을 높여가고 있는 단계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통합하는 단계에 이르면 정식 발표할 예정이다.
더불어 “휴머노이드의 최종 목표는 범용성”이라고 박 센터장은 덧붙였다. 아직은 성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많은 일손이 필요하며 많은 훈련 기록이 있는 제조 분야에 우선적으로 투입되겠지만 조금 더 많은 동작을 수행할 수 있게 되면 더 복잡한 가사 및 야외 활동에도 활용되길 기대하고 있다.

‘AI와 로봇 활용의 확대’ 위협이 아닌 조력으로 이해해야···

AI와 로봇의 활용성이 확대될수록 ‘내 자리를 빼앗기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박동일 센터장은 이에 대해 의연하게 설명했다.
“제가 20년 전에 처음 받았던 과제가 ‘인간과 공존하기 위한 로봇 기술 기획’이었습니다. 20년 전에도 지금도 목표는 한결같습니다. 인간을 돕는 조력자로서 로봇 기술을 개발합니다. 컴퓨터가 생기기 전후를 떠올려 보시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컴퓨터가 불가능해 보이고, 오래 걸리고, 어려운 많은 일을 대체하며 생활이 더욱 편리해진 것처럼, 휴머노이드도 그런 양상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기계가 잘하는 일은 기계가 하게 두고, 우리는 AI와 로봇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컴퓨터가 생기고 컴퓨터 활용 능력이 주목받은 것처럼, AI와 로봇을 어떤 분야에 어떻게 응용하고 활용할지가 주요해질 것입니다. 소위 서비스 로봇*을 말하는데요. 이 서비스 로봇을 다루는 분야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합니다.”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겠지만, 그 흐름을 따르기 위해 반드시 AI와 로봇을 전공이나 직업으로 삼으라고 권할 순 없다고. 특히 로보틱스 분야는 다른 학문보다 기계, 소재, 전기전자, 생명공학, 뇌공학 등 많은 기술이 집약된 융합 학문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분야별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모아 만들어지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일수록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도 성향이나 기질이 맞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적성에 잘 맞고,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학생들에게 박 센터장은 조언했다.

* 산업용 로봇의 응용 분야가 확장되어 가정용, 의료용, 국방, 농업용 등과 같이 전 산업 분야로 확장된 형태를 의미

실패를 겪을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도 배움의
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첨단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이란
후자에 가까워야 만족도가
높은 분야인 듯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권장되는 ‘로보틱스 분야’

그렇다면 첨단로봇연구센터에는 어떤 적성을 발견한 사람들이 찾아온 것일까?
처음엔 자동차 중에서도 자율주행차에 관심이 많았다는 박종천 연구원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배달 로봇, 로봇 청소기 등 다양한 기계에 자율주행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다 문득 ‘로봇 청소기에 팔이 있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겼고, 이를 말미암아 로봇팔 연구에 뛰어들었다. 로봇팔의 수행 능력을 높이는 연구를 지속하다 휴머노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고, 현재는 휴머노이드의 걷기 훈련과 교육에 치중하고 있다. 자동차에서 시작한 호기심이 멀리 휴머노이드까지 데려온 것이다. 그래서 박 연구원은 “호기심이 많으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덧붙였다.
“휴머노이드와 같이 정착되지 않은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실패를 거듭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걸음마나 자전거를 배웠을 때를 생각해 보면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걷는 걸, 자전거 타는 걸 포기하지 않잖아요. 그와 비슷한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겪을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도 배움의 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첨단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이란 후자에 가까워야 만족도가 높은 분야인 듯하다. 박 연구원의 말마따나 “남들에겐 힘든 일이 내게는 힘들지 않다고 느껴지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천부적 재능마저 뛰어넘는 적성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정답이 없는 세상이잖아요. 학생 때는 무엇을 선택하려 하지 말고, 주어지는 가르침을 열심히 학습하는 동시에 내가 무엇을 즐거워하고 또 잘하는지 계속해서 탐구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학생들이 자신만의 중심을 잘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분주한 현장으로 떠나는 박동일 센터장의 뒤로 곧 그를 따를 학생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