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연구소

청소년 또래 관계가
학교유대감과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글. 장근영 선임연구위원(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년정책연구본부)

청소년 또래 이미지

청소년기는 ‘제2의 탄생’이라 불릴 만큼 나와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이때 아이들은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처음으로 스스로 관계를 선택하고, 그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또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 아닌 자아정체성과 정서적 안정, 학교 적응을 좌우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래 관계가 청소년의 마음과 학교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한다면 아이들이 서로 연결되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청소년 또래 일러스트

또래 관계가 중요한 이유

20세기 심리학자들은 청소년기를 가리켜 ‘제2의 탄생기’라 일컬었습니다. 부모로부터 신체적으로 분리되는 순간이 첫 번째 탄생이라면, 심리적으로 벗어나는 순간이 청소년기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타인임을 인정해야 하고, 자녀는 부모의 울타리 밖에서 스스로 관계를 맺고 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불안과 긴장, 갈등과 오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때 아이들에게 또래 친구들은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청소년기 친구 관계는 단순히 ‘함께 노는 존재’가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선택한 중요한 인물이고, 부모 대신 나의 선택을 검증해 줄 존재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를 탐색하는 여정에 함께 해줄 동료입니다. 따라서 청소년기 또래 친구와의 경험은 개인의 자아정체성 형성과 정신 건강을 구성하는 핵심 자산입니다. 즉, 또래 관계는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불가항력적 요소입니다.

친구와 함께하는 법을 배우는 곳, 학교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학교의 역할이 단지 교과 수업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가장 중요한 학습은 친구들과의 사회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실제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도 대개 친구 관계에 있습니다. 나랑 함께 밥을 먹어주는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가 학업성적보다 더 중요합니다. 아이가 학교에 남을지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는 학교 안에서 맺는 관계의 질입니다. 이 사실을 외면한 채 교육 문제를 논하는 것은 토양을 무시하고 열매만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림 1. 청소년 고립·은둔 시작 이유
단위: %

대인관계 그래프

공부,학업 그래프

진로,직업 그래프

가족관계 그래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기간 2024년 1~10월, 온라인 웹조사 6월 11일~8월 31일, 응답자 2,139명, 복수응답

청소년의 뇌는 또래를 향해 설계되어 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뇌의 사회적 보상회로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됩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의 평가보다 또래의 반응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친구에게 인정받을 때 느끼는 쾌감은 성인보다 훨씬 강렬하고, 반대로 무시당하거나 소외되었을 때의 고통도 큽니다. 의지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에게 필수적인 사회적 기술인 수평적 공감능력이나 상호적 신뢰의 경험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또래와의 교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차단될 때 아이는 건강한 사회성 습득의 기회를 빼앗깁니다. 실제로 또래 관계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학생일수록 수업 참여도가 높고, 교칙 준수 의지도 강했습니다. 반면 ‘공부하기 싫은 아이’처럼 보이는 상당수는 사실 ‘학교 안에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아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지키는 건 친구의 ‘수’가 아닌 ‘질’

친구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나는 이 학교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속감은 청소년기에 흔히 찾아오는 정서적 위기, 특히 우울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강력한 방파제가 됩니다. 좋은 친구 관계가 학교를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고, 따뜻한 공간이 다시 아이의 마음을 지키는 선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 또래 관계에서 거듭 소외된 아이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학교에 마음을 닫습니다. 갑자기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는 사실 오래전부터 혼자였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림 2. 청소년의 고민상담 대상

통계청, 2022년 사회조사 결과 통계청, 2022년 사회조사 결과

관계를 설계하는 교육의 역할

첫째, 학교 문화를 경쟁에서 협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등수와 점수가 지배하는 교실에서 옆자리 친구는 동료가 아닌 경쟁자가 됩니다. 점수와 상관없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각자 역할이 서로에게 필요한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가 되는 경험을 주어야 합니다.

둘째, 감정을 언어화하는 능력을 가르쳐야 합니다.
또래 애착의 핵심은 결국 의사소통입니다. 많은 아이가 관계에서 상처받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을 폭력으로, 외로움을 회피로 표출하는 대신 언어로 꺼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모와 선생님부터 그런 태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셋째, 교사의 역할과 권한을 보장해야 합니다.
급식 시간에 혼자인 아이, 친구와 다툼을 벌이는 아이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사람은 교사입니다. 소외된 아이를 살피고 또래 간 갈등이나 불화를 중재하기 위해서는 권한이 필요합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을 인정할 때 교사의 역할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좋은 학교란 학생들의 성적이 좋은 학교일까요? 물론 성적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누구와 점심을 먹었는지, 힘들 때 누가 먼저 말을 걸어줬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의 관계 경험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세상을 신뢰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찬란하면서도 가장 취약한 청소년기를 버티게 하는 것은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친구 한 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학교가 아이들에게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림3. 새학기에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한 고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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