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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록이
내일의 역사가 된다

임희연 기록연구사 이미지

기록연구사, 서울특별시교육청 기록관

글. 조은겸 / 사진. 김성재 / 자료사진. 임희연

기록을 관리하는 사진

오래된 문서 한 장이 기관의 시작을 증명하고, 빛바랜 학적부 한 장이 누군가의 삶을 이어주는 새로운 단서가 되기도 한다. 기록은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잊힐 뻔한 기억에 빛을 비춘다. 기록관리의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기록연구사가 왜 기억을 지키는 사람인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얼핏 과거를 보존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결국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서울시교육청에서 19년째 근무하고 있는 임희연 기록연구사를 만나 기록을 남기고 지키는 일이 왜 필요한지 들어보았다.

1977년 청사이전(영등포구 여의도동 1-163번지)_현 윤중중학교 1977년 청사이전(영등포구 여의도동 1-163번지)_현 윤중중학교

1981년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 현판식(종로구 신문로2가) 1981년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 현판식(종로구 신문로2가)

조직의 기억을 관리하는 사람

임희연 기록연구사는 서울특별시교육청에 맨 처음 임용된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으로, 19년째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오랜 기간 한 기관의 기록을 돌봐 온 그는 기록연구사라는 직업에 대해 ‘한 조직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문서와 다양한 형태의 기록정보를 분류하고 관리하며, 체계를 세워 보존하고 필요한 사람들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기록연구사라고 하면 흔히 오래된 종이 문서를 정리하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역할은 범위가 훨씬 넓다. 기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파악하고, 무엇을 남기고 보존할지 판단하며,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정리하는 일까지 모두 기록연구사의 몫이다.
보통 기록관리 분야는 ‘문헌정보학, 역사학, 행정학’ 등을 전공한 다음에 기록관리 대학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임희연 기록연구사의 전공은 이 분야가 아닌 ‘수학교육’이었다.
“우연히 기록관리라는 학문을 접하게 되었고, 조금 늦게 공부를 시작했어요. 널리 알려진 분야는 아니지만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 지역 공동체, 마을 아카이브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답니다. 문헌정보학, 역사학, 행정학 등과 연결해 진로를 생각해 볼 수도 있죠. 기록관리 대학원 과정으로 전문성을 더 키우는 길도 있습니다.”
기록연구사와 잘 맞는 사람의 성향을 묻자 ‘차분하고 꼼꼼한 사람’이라 답했다. 자료를 볼 때 현재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료의 의미와 앞으로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태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소 일기를 쓰거나 과거 사진을 정리해 들여다보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자료를 크고 넓은 맥락에서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기록연구사라는 직업과 잘 맞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서고에는 서울교육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70년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청사 현판 1970년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청사 현판

1982년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 청사 (종로구 신문로 2가) 구내매점 개점식 보도자료 1982년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 청사
(종로구 신문로 2가) 구내매점 개점식 보도자료

서고 안에서 발견하는 교육의 역사

서울특별시교육청 서고에는 서울교육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교육행정이 지나온 발자취가 담긴 소중한 자료들이기에 기록연구사의 일은 단순히 문서 보관에 그치지 않는다. 다시 꺼내어 보며 오늘의 관점에서 의미를 살피고, 내일의 교육을 위한 단서로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하게 관리하는 기록물을 묻자 ‘1956년 10월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가 처음 발족할 당시의 승인 문서’를 꼽았다. 한 기관의 출발을 증명하는 문서가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록이 지닌 힘과 가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서다.
“한 번은 어느 학교에 방문했다가 그 학교 건물의 최초 설계자가 우리나라의 유명 건축가였다는 사실을 기록을 통해 알게 된 적이 있어요. 또 국가기록원 자료를 찾다가 특정 학교의 전신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알게 된 적도 있었죠. 그때 과거와 현재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처음에는 낱개의 자료처럼 보이던 기록들이 시간이 지나 머릿속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이윽고 그 조직의 사무 맥락이 분명해진다. 그 순간은, 이 직업만의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서울교육의 모든 자료가 모여있는 서고 서울교육의 모든 자료가 모여있는 서고

기록연구사도 이제 디지털 환경 전체를 이해하고
새로운 기록방식을 익혀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라진 한 장이 남기는 공백

임희연 기록연구사는 기록관리의 어려운 점으로 ‘그 중요성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점을 꼽았다. 기록은 없어도 당장은 티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꼭 필요한 자료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공백은 생각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어떤 연도의 기록은 남아 있는데 유독 한 해의 기록만 빠져 있는 경우라면, 지금은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미래의 어떤 순간에 결정적인 결핍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요성을 절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있었다. 전쟁고아들을 모아 세운 ‘알레시오초등학교’가 폐교된 뒤, 그 학교의 학적부가 기록관으로 넘어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 어머니가 어릴 때 헤어진 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며 찾아왔고, 혹시 학적부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생활기록부에는 사진이 붙어 있지 않았다. 그는 이 일을 떠올리며, 만약 당시 담당자가 사진을 붙여 두었더라면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자료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기록은 행정상의 필요로서 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삶과 기억,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물론 보관된 기록을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정보가 포함된 기록은 당사자만 열람할 수 있고, 내부 직원 대상 자료는 일반인이 보려면 정보공개청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다만 당사자나 가족처럼 정당한 열람 권한이 있는 경우에는 접근이 가능하다. 이처럼 기록의 공개 범위와 활용 가능성을 함께 판단하는 역할 또한 기록연구사의 중요한 책임이다. 기록의 공공성과 개인정보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이 각국에서 받은 행정박물들 서울특별시교육청이 각국에서 받은 행정박물들

미래를 준비하는 기록연구사

기록관리의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종이 문서가 주된 기록물이었다면, 이제는 행정정보 데이터, 홈페이지, 이메일 같은 디지털 자료들도 중요한 관리 대상이 되고 있다.
“기록연구사도 이제 디지털 환경 전체를 이해하고 새로운 기록방식을 익혀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부분에 관한 공부와 연구가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여기에 디지털 환경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재현하려면 훨씬 더 큰 비용이 들게 된다. 홈페이지를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하거나, 특정 시기의 디지털 환경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면 종이 문서 보관과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실제로도 임 연구사 역시 전산 파트와 함께 하는 일이 많아졌다. 종이에서 전자 파일로, 문서에서 데이터로, 보관에서 재현으로 기록의 개념이 넓어지는 시대에 기록연구사도 계속 배우고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사관들은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 자체에 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기록연구사 역시 한 조직의 역사와 기억을 남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임희연 기록연구사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라는 표현이다. 기록은 시간을 견디는 힘을 넘어, 다가올 세대에게 건네는 가장 선명한 대화라고 볼 수 있다. 어제를 정리하는 역할을 지나, 오늘의 가치를 발견해 미래로 전수하는 사람. 기록연구사는 흩어지는 시간의 파편을 모아 인류의 지혜로 완성하는 '가치의 증명자'이다.

수입증지 이미지

1959년 수도교육 (최초 교육청 소식지 창간호) 1959년 수도교육 (최초 교육청 소식지 창간호)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 발족 문서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 발족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