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자라는 학교
우리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서울과학고등학교 천문동아리 ‘블랙홀’
글. 편집실 / 사진. 김성재
꿈이 자라는 학교
글. 편집실 / 사진. 김성재
도시의 불빛이 가득한 서울에서 별을 보는 학생들이 있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난 뒤 학교 옥상에 천체망원경을 설치하고 새벽에 찍힐 우주의 흔적을 기다린다. 그리고 우주를 향해 저마다의 질문을 던진다. 서울과학고등학교 천문동아리 ‘블랙홀’은 천체를 관측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연구와 탐구로 확장하며 미래 과학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서울과학고등학교 천문동아리 ‘블랙홀’은 올해로 36기를 맞은 전통 있는 동아리다. 학교 개교 초기부터 명맥을 이어온 만큼 지금까지 수많은 학생이 이곳에서 밤하늘을 관측하고 우주를 탐구했다. 선배들이 남긴 관측 자료와 연구 기록은 오랜 시간 동안 데이터로 쌓였고, 후배들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탐구를 이어간다.
학생에서 학생으로 이어지는 지식은 ‘블랙홀’ 부원들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 중 하나다. 또 다른 특징은 자율성이다. 무엇을 관측할지, 어떤 주제를 연구할지, 어떤 방식으로 결과를 정리할지 학생들이 직접 결정한다. 밤하늘에 떠 있는 성운과 성단, 은하를 관측하는 일부터 연구 논문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까지 모두
학생들의 손으로 이뤄진다.
“저희에게 천문동아리는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에요. 별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우주를 향한 호기심을 스스로 탐구하고 검증하는 일은 연구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국제천문올림피아드(IAO) 한국 대표로 출전할 만큼 전문성을 갖추고 활동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무엇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천문동아리 활동은 자연스레 진로 탐색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천문학자와 연구원을 꿈꾸고, 누군가는 공학이나 데이터 분석 분야로 관심을 넓혀간다. 하지만 진로와 상관없이 공통으로 얻는 것이 있다. 바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탐구의 즐거움이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신재호 학생이 직접 촬영한 오리온 대성운
천체관측은 긴 기다림의 과정이다. 망원경과 촬영 장비를 세팅하고, 특정 시간에 천체가 가장 잘 보일 수 있도록 관측 계획을 세운다. 서울 도심의 강한 빛 공해 때문에 관측 환경이 좋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러한 제약은 더 많은 고민과 연구를 안겨준다. 촬영 역시 셔터만 누르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망원경을 통해
들어온 빛을 여러 필터로 분리해 기록한 뒤 데이터를 쌓고 정렬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천체사진이 완성된다.
“같은 데이터를 활용하더라도 보정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만들어지기도 해요. 이 과정을 통해 물리학과 수학은 물론 프로그래밍과 데이터 분석 능력까지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어요.”
직접 관측한 경험은 학생들의 시선도 바꿔놓았다. 처음 오리온성운을 망원경으로 바라봤을 때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 그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실감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단순히 천체를 관측하는 데서 나아가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넓어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최근 달 탐사와 우주산업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아르테미스 2호 발사 장면을 함께 지켜보며 미래 우주 시대를 상상하고, 관측 장비의
성능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이토록 에너지를 쏟는 이유는 그 시간이 학습과 일상의 경계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관측과 토론은 활력이 되고, 먼 우주의 빛을 좇아 순수한 호기심에 집중하는 시간은 치열함을 잠시 벗어던질
수 있게 해준다.
‘블랙홀’은 앞으로도 다양한 관측 프로젝트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그중 하나가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Charles Messier)가 정리한 110개의 천체 목록을 촬영하는 장기 프로젝트로, 단순한 관측을 넘어 서울과학고등학교만의 천체 데이터와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서울의 관측 환경에서도 볼 수 있는 성운과 성단,
은하를 하나씩 기록해 나가는 작업으로, 현재까지 여러 천체의 촬영을 마쳤다. 단기간에 완성하기 어려운 프로젝트인 만큼 앞으로 입학할 후배들이 이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학생들이 관측하는 것은 별만이 아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고 싶은지에 대한 답 또한 함께 찾고 있다. 밤하늘을 향한 작은 호기심은 그렇게 꿈을 비추는 또 하나의 별빛이 되고 있었다.
“별을 관측하는 방법뿐 아니라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즐거움을 배웠어요.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이 경험이 큰 자산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성운을 촬영하고 결과물을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정말 커요. 특히 팩맨 성운(NGC 281)*을 촬영했던 경험은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 팩맨 성운(Pacman Nebula) : NGC 281이라고도 부르며, 카시오페이아자리의 발광성운이다. 아케이드 게임 중 하나인 팩맨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